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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논란까지 번진 ‘대림동 여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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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경찰관이 취객 체포 중 미숙함을 보였다는 논란이 일자 서울 구로경찰서는 이를 반박하며 전체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기존 편집된 영상에 없었던 여성 경찰관이 취객을 제압하는 모습. /서울 구로경찰서 제공

"경찰 근무환경부터 개선해야"…체력검정 강화도 추진[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13일 오후 10시가 다 돼갈 무렵, 서울시 구로구 한 식당에서 술에 취한 중년 남성 2명이 난동을 부렸다. 신고를 받고 남녀 경찰관 2명이 출동했으나 취객은 남성 경찰의 뺨을 때리고 여성 경찰을 밀치는 등 위협을 가했다. 온라인에는 여성 경찰이 취객에 밀려나는 장면만 편집돼 떠돌며 “대한민국 여경의 현주소”라고 조롱당했다. 이에 구로경찰서는 여성 경찰이 취객을 무릎으로 누르고 제압하는 장면이 추가된 1분 59초 분량의 전체 영상을 공개했다. 이른바 ‘대림동 여경 논란’의 전말이다.

그러나 전체 영상 공개 후에도 여경의 취객 진압 능력에 대한 논란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여경이 주변에 있는 시민을 향해 “남성분 나와 달라”고 외친 것, 동료 남성 경찰에게 수갑을 채우라고 말한 것이 문제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경찰이 보호 대상인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수갑 하나 채우지 못해 동료에게 부탁하는 등 여경의 능력이 부족했다고 질타했다. 해당 여경은 강도 높은 비난을 한 누리꾼을 고소한 상태다. 구로경찰서는 “정신적 충격이 심하다”며 여경에게 휴가를 권고했다고 전했다.

여성계에서는 여경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여성 혐오라는 의견이 나온다. 여성운동단체 '불꽃페미액션'의 한 활동가는 "이번 논란의 원인은 여경의 미숙함보다는 여성에게 쉽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사회 분위기에 바탕을 둔다"고 풀이했다. 그는 “최근 불거진 버닝썬 게이트 등 남성 경찰이 문제가 됐을 때는 ‘이래서 남성 경찰을 뽑으면 안된다’는 비난이 없었다”며 “해당 여경이 실제로 미숙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영상 속 여경 한명의 행동만 보고 여경 무용론까지 제기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설명했다.

13일 발생한 '대림동 여경 논란'이 여경무용론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경찰대학생 간부후보생 합동임용식장에 입장하는 여성 임용자들./뉴시스

신미영 대구여성회 사무처장 역시 이 논란은 영상 속 경찰의 성별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신 처장은 “만약 남성 경찰 2명이 동일한 방식으로 진압했다면 술에 취해 공권력을 방해한 취객에게 비난이 집중됐을 것”이라며 “직접적으로 경찰에게 위해를 가한 취객보다 진압하던 여경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지는 것은 여성에 가혹한 풍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 문제점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여경의 현장 대응이 논란이 될 정도로 미숙했는지도 의문이라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김양현 신라대학교 경찰학 전공 교수는 "진압 중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한 행위는 일반적인 상황이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평소에는 ‘경찰을 도와 범죄자를 진압한 용감한 시민’이라는 미담으로 승화될 해프닝”이라며 “경찰이 시민에게 협조를 요청해서라기 보다 여경이 부탁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여경 혐오를 넘어선 여성 혐오”라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경찰학 전공자로서 영상 속 여경은 인사불성인 상태에서 경찰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취객을 무릎으로 눌러 수갑을 채울 수 있게 도왔다. 미숙한 진압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구로경찰서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남성 동료에게 수갑을 채우라고 한 발언은 요청이 아닌 대답이었다. 여경이 난동을 부리는 취객을 무릎으로 누른 후 동료 경찰이 “(수갑) 채워요?”라고 묻자 “네, 채워요. 채우세요”라고 재차 대답한다. 당시 함께 업무를 수행한 동료 교통경찰관 역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여경이) 수갑을 준 것은 맞지만 함께 수갑을 채웠다”며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는데 여경이 취객을 완전히 제압했다"고 증언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21일 경찰 채용 체력검정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면서도 '대림동 여경'의 현장 대응은 적절했다고 평가했다./김세정 기자

이번 논란은 경찰 선발 체력검사 기준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기초체력측정을 위해 실시되는 팔굽혀펴기의 경우 남성은 1분에 12개 이하를 하면 과락, 여성은 무릎을 대고 1분에 10개 이하면 과락이다. 팔굽혀펴기도 정자세로 하지 못하는 등 기초적 체력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여성 경찰이 배출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경찰대학은 지난 4월 2021년 입시부터 남녀를 통합선발하고 여성 체력 검사기준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무릎을 땅에 대고 했던 여성의 팔굽혀펴기 자세를 남성과 똑같이 변경한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경찰 채용 때 체력검정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21일 밝혔다.

그러나 체력 문제를 이유로 여경을 비하하는 건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가정폭력, 성폭력 등 여성 피해자가 절대다수인 범죄가 많은데 여경을 뽑지 말자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난색을 표했다. 팔굽혀펴기 자세 및 횟수에 대해서는 체력검정기준 자체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기준으로도 기초적 체력을 측정하는데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며 “실제 경찰 업무는 민원이 70%고 물리적 진압이 30%에 불과하다. 성별을 떠나 체력 측정 기준 자체가 과잉 수준”이라고 했다.

이현재 한국여성학회 대외협력위원장은 "여경 논란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사회적 약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심리에서 비롯됐다"며 “경찰의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보다는 경찰의 성별을 문제 삼으며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족한 인력과 장비 속에서 과잉진압까지 조심해야 하는 근무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번 논란을 두고 "대림동 여경의 행동은 침착하고 지적이었다.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ilraoh_@tf.co.kr

원문 출처 [TF초점]여성혐오 논란까지 번진 ‘대림동 여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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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 여경 논란'에 구로경찰서 "사실과 다르다"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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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 여경 대응 미숙 논란에 서울구로경찰서는 17일 원본 영상을 공개하며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에 나섰다. /서울구로경찰서 영상 캡처

경찰 측 "소극적 대응 아냐"…원본 영상 공개[더팩트ㅣ지예은 기자] 주취자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여성 경찰관의 대응이 미숙했다는 논란이 확산되자 서울구로경찰서가 해당 영상을 공개하며 반박에 나섰다.

서울구로경찰서는 지난 17일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 동영상 관련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고 1분 59초의 전체 동영상을 함께 공개했다.

구로경찰서 측은 자료를 통해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체포 영상은 편집된 것"이라며 "동영상 중 남성경찰관이 뺨을 맞는 순간부터 여경이 무전을 하는 장면까지 내용이 편집됐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여경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사실과 다르며 대응이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구로경찰서 측은 "여경의 무전은 공무집행을 하는 경찰관에게 폭행을 가할 경우 '필요 시 형사, 지역 경찰 등 지원요청'을 하는 현장 매뉴얼에 따라 지구대 다른 경찰관에게 지원요청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로경찰서는 지난 13일 오후 10시쯤 구로구의 한 음식점 앞에서 술값 시비로 출동한 경찰관에게 욕을 하고 폭행을 한 혐의로 남성 2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jie@tf.co.kr

원문 출처 '대림동 여경 논란'에 구로경찰서 "사실과 다르다"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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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의료복지재단 제중요양병원, 개원 1주년 비전·미션 선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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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제중의료복지재단 제중요양병원 (이사장 원충희)이 17일 개원 1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비전 및 미션 선포식을 가진 뒤 '생명존중의 정신을 지고지순의 가치로 삼는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제중요양병원 제공

환자가 주권을 갖는 미래형 병원 지향...도전과 혁신을 통해 건강한 삶의 질 선도 결의[더팩트 | 최영규 기자] ‘생명존중의 정신을 지고지순의 가치로 삼는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재단법인 제중의료복지재단 제중요양병원 (이사장 원충희)이 17일 개원 1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비전 및 미션 선포식을 가졌다. 개원 기념식에는 원충희 이사장과 장지훈 병원장을 비롯한 임직원 등이 참가한 가운데 기념사 및 축사, 비전 및 미션 선포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서 제중요양병원은 ‘생명존중의 정신을 지고지순의 가치로 삼는다’는 새 비전을 제시했다. 제중병원은 전체면적 4300평, 최대 300병상 규모로 재활치료실과 인공신장실을 동시에 갖추었으며 재활의학과, 신경과, 내과,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이 한 단계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직원들은 ‘환자 중심에서 생각하고 환자의 만족을 얻는 데 최선을 다하는 병원, 혁신적인 사고로 차별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병원’이라는 미션을 낭독하며 결의를 다졌다.

지난해 5월 개원한 뒤 공공의료 강화 및 의료수준 향상을 경영목표로 폭넓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서울 구로구 제중요양병원 외관./제중요양병원 제공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핵심전략도 공개했다. ‘권한과 책임에 기반한 자율화, 차별화된 전문화 그리고 소통을 통한 개방화’를 실천요소로 삼아 구성원들이 최선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는 미래형 직장으로 만들어 갈 계획이다.

원충희 이사장은 ‘개원한 지 만 1년의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놀랄만한 성과를 올린 데 대해 최선을 다해 준 임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한다’며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병원이 될 수 있도록 대동단결해 나아가 달라’고 당부했다.

장지훈 병원장은 축사를 통해 "개원 1주년을 맞이하게 돼 기쁘고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누구에게나 최상의 진료를 제공하는 제중요양병원이 되도록 구성원 모두가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개원한 제중요양병원은 공공의료 강화 및 의료수준 향상을 경영목표로 폭넓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재단은 지역주민들과의 커뮤니티 강화를 위해 구로구의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제중요양병원 지하 1층으로 유치했고, 장애인 운동선수 2명을 고용하여 장애인의 스포츠활동 참여기회 확대와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있다.

thefact@tf.co.kr

원문 출처 제중의료복지재단 제중요양병원, 개원 1주년 비전·미션 선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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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 삶과 죽음의 숨가쁜 교차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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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센터의 24시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전쟁터와 같다. 119 구급대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이동률 기자
응급센터의 24시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전쟁터와 같다. 119 구급대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이동률 기자
응급센터의 24시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전쟁터와 같다. 119 구급대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이동률 기자

국내 응급의학계의 큰 별이었던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지난 설 연휴 근무 중 갑자기 숨지며, 열악한 응급의료 환경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환자는 많고, 의사는 적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응급실에 대한 인식 및 운영 등 다양한 문제로 응급의료 체계는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더팩트>가 국내 응급의료 현황과 문제, 개선이 더딘 이유를 집중 조명했다. 또한, 서울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과 함께한 24시간 동행 취재로 '전쟁터'와 같은 응급의료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한다. 나아가 전문가를 만나 우리나라 응급의료가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편집자주>

고려대구로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24시간 현장 취재[더팩트ㅣ고대구로병원=임현경 기자] "사망하셨습니다."

영화에서나 듣던 '삐-' 소리가 그치고 환자 가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의사는 그들이 오열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당직실에 들어간 그는 잠시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떨궜다. 표정은 덤덤했지만, 한숨과 함께 내려앉은 한 마디는 무거웠다. "보낼 사람은 보내드려야지." 의사는 벌떡 일어나 환자들에게 돌아갔다.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그곳 '응급실'에서, 그가 숨을 고른 시간은 겨우 2분이었다.

'힘들다', '쉴 틈이 없다',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응급실 환경의 열악함은 각종 보도와 영화, 드라마 등 매체를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더팩트>는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실태를 보다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지난 19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을 찾았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중증응급환자 중심 진료와 재난 대비 및 대응을 위한 거점병원의 역할 등을 수행하는 곳이다. 보건복지부가 응급의료법 제26조에 따라 지정한 권역응급의료센터는 권역 내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 다른 의료기관에서 이송되는 중증응급환자 수용 등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는다. 취재진은 19일부터 20일까지 문자 그대로 '24시간' 응급센터에 머물며 응급의료 종사자와 환자들이 처한 현실을 체험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전공의는 주기적으로 24시간 당직을 선다. 휴식공간 내에서도 CCTV 모니터를 통해 센터 상황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동률 기자

"새벽엔 몸에 식칼이 꽂힌 채 실려 온 환자가 있었어요."

오전 9시 30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의료진은 이날 오전 한 중년 여성이 부부 싸움 중 남편이 휘두른 식칼에 찔려 사망했다고 전했다. 왼쪽 겨드랑이 아래에서 심장을 정조준한 칼날은 환자의 주요 혈관들을 관통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의료진은 이를 'DOA(Dead on Arrival, 병원 도착 전 이미 사망한 경우)'라고 표현하며 "드물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센터에는 총 30개의 침대가 있고, 그중에서도 1번~16번 침대는 '중증응급환자진료구역'으로 집중 처치가 필요한 중증 환자들이 사용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몰리는 주말 저녁, 명절 연휴, 방학철 등에는 여분의 보조 침대를 꺼내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경증 환자들은 TR로 분류해 침대 대신 따로 마련된 대기실과 진료실을 이용한다. 일반격리실과 음압격리실, 소생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한 소생실, 외상에 대해 간단한 시술 및 수술을 할 수 있는 처치실도 있다.

소생실에는 체격이 아주 작은 남자아이가 누워있었다. 기껏 해봐야 4살 정도로 보였지만, 아이는 9살이었다. 통통한 젖살은 찾아볼 수 없이 비쩍 마른 몸, 발목·발등·무릎 뒤·손목 등 혈관이 보이는 모든 부위에 꽂힌 주삿바늘,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인공호흡기까지, 단번에 상태가 위중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공의는 뇌에 있던 암세포가 뼈, 장기 등 다른 곳까지 전이된 상태라고, 집에서 꾸준히 통원 치료를 받았는데 오늘 새벽 '심정지 직전'에 이르러 실려 왔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이별하실지를 결정하실 때인 것 같습니다." 소아과 전문의가 환자의 증상, 예후, 의식 상태 등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두 발로 서있을 힘조차 없는 환자의 어머니는 등을 벽에 기대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DNR(Do Not Resuscitate, 소생 포기)'은 생명 연장이 오히려 환자의 고통을 지속한다고 판단할 때, 환자 또는 보호자는 소생술을 포기하는 경우를 말한다. 보호자는 이날 의사와 긴 상의 끝에 DNR 동의서를 작성했다.

응급센터에서는 CT를 주로 촬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MRI 촬영 도중 환자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환자가 CT 촬영을 위해 이송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오전 11시 45분 의료진은 1번 환자의 전원 준비로 분주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위독한 1번 환자는 응급 상황을 넘기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고대구로병원에는 빈자리가 없었고, 주변 여러 병원에 문의한 끝에 서울 중구에 있는 한양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수용하기로 했다. 의료진은 해당 병원 감염내과에 전화를 걸어 환자 상태와 주의할 점을 알리는 한편 인턴에게 구급차 내에서 이뤄져야 할 처치를 설명했다. "눈이 많이 와서 큰일이네. 차라리 내가 가고 싶다." 인턴을 혼자 보내는 레지던트(전공의)의 마음은 무거웠다.

아픈 사람은 쉼 없이 나타났다. 오전 11시 50분 28번 침대에 다리 저림과 복통을 호소하는 16세 환자가 왔다. 지하철에서 내리던 중 갑자기 실신했다는 것이다. 전공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실신 당시 의식을 잃었는지, 과거에 어떤 병력이 있었는지를 묻고 실신할 수 있는 이유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앞으로 받을 검사 종류와 그 이유에 대해 알렸다. 보호자(어머니)는 환자의 발에 핫팩을 대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윤영훈 센터장은 당직실에서 레토르트 컵밥으로 대충 점심을 챙겨 먹었다. 당직실 한쪽엔 컵라면, 컵밥, 초콜릿 등 비상식량들이 쌓여있는데, 어디 나가서 끼니할 겨를이 없을 땐 이곳에서 후루룩 허기를 달랜다. 이조차 환자들이 몰리는 때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윤 센터장은 재난 대비훈련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다. 권역 내 다른 병원과 함께 재난 상황에 대비한 응급의료 훈련을 하는 것도 권역센터의 몫이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1번 침대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잠시, 이번엔 근처 목재 공장에서 부상을 입은 환자가 실려 왔다. 처치실에 누운 그의 왼손에는 노란색 박스테이프가 칭칭 감겨있었다. 공장 동료들이 해줄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었겠으나, 본드가 얇게 발린 테이프 접착면이 상처에 좋을리 없었다. 허광렬 치프(Chief, 레지던트 4년차)가 가위로 테이프를 잘라내자, 깊은 상처가 검붉은 피를 쿨럭였다.

목재를 자르는 톱날이 그의 손을 벤 것이다. 신경은 살아있지만, 힘줄이 다 끊어진 상태였다. 간단한 응급 수술 후 정형외과에 입원해 정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응급구조사가 상처에 식염수를 붓고 지혈하기를 반복할 때마다 환자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상처보다 더 아픈 것은 그가 닥친 현실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놈인데 이래서야... 공장은 보험도 안 들었을텐데......." 홀로 누운 그가 허공에 힘없이 던진 말이었다.

응급센터 의료진의 옷과 신발에서는 혈흔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종종 갑작스러운 출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동률 기자

"보호자 연락 닿았어요?" "10분 뒤 도착이요!" 1번 침대에 다른 병원에서 이송된 새 환자가 들어왔다. 체온, 심박 수(HR), 호흡수(RR), 혈압(BP), 산소포화도 등 바이털 사인이 엉망이었다. 기기가 요란하게 울어대며 그의 상태를 알렸다. 환자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이나 진료 내역 등을 물어도 돌아오는 것은 거친 숨소리뿐인데, 대신 대답해줄 보호자는 10분 뒤에야 도착한단다.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의료진은 옷을 자르고 약물을 주입하기 위한 관을 연결하고, 초음파로 의심스러운 질환 등을 살폈다. 다른 한쪽에서는 쇄골 밑으로 긴 관을 삽입했다. 쇄골하정맥을 통해 삽입한 관은 우심방에 닿아 각종 약물을 빠르게 주입할 수 있도록 한다. 1시 20분 1번 환자의 보호자가 도착했다. 의료진은 그에게 남편이 평소 음주나 흡연을 했는지, 가족 중 관련 질병을 앓다 돌아가신 분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울먹이며 고개를 젓기만 하던 보호자는 잠시 뒤에야 "몇 년 전 건강검진에서 '불규칙하게 뛰는 게' 있었다고 했다"고 어렴풋이 회상했다.

"응급의학과는 병을 찾아내는 탐정"이라던 허 치프의 말이 떠올랐다. 의료진은 환자가 기존에 진료받았던 병원 기록을 살피고 CT, 혈액검사 등 각종 검사를 시행했다. 일단 '불규칙하게 뛰는 것'이 부정맥이라는 데에 무게를 두고 본격적인 처치에 힘썼다. 내과 전공의가 보호자에게 예상되는 병명과 증상, 그에 필요한 처치 등을 설명했다. 의사는 가족관계를 물었고 보호자 는 "제가 아내고 딸이 두 명있다"고 답했다. 의사는 "한 가정의 가장인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며 보호자를 안심시켰다.

중증 환자실에 있는 모두의 이목이 1번 침대에 쏠렸다. 한쪽에선 처치를, 한쪽에선 바이털이 떨어지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그때 근처를 배회하던 또 다른 보호자가 퇴원을 독촉했다. "쟤는 낫는 병도 아니고 뭐 정신병인데 빨리 퇴원 좀 시켜봐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15번 침대. 한 중년의 여성이 몸 곳곳에 호스를 꽂은 채 고통스럽게 누워있었다. 정신질환일리가 없었다. 나중에 전공의에게 들은 바로는 '요로 감염으로 입원이 시급한' 상태였다. 그런데 왜 퇴원을 요구하느냐 묻자 전공의는 한숨을 뱉었다. "흔한 일이죠. 그런 보호자는 이상한 축에도 못 껴요."

일반 병원 및 외래 진료가 가능한 낮 시간에도 응급센터는 환자 맞이로 분주했다. 한 남성이 응급센터에 실려왔다. /이동률 기자

1번 환자의 병명은 급성 심근경색, 관상동맥이 막히거나 좁아지면서 심장 근육이 괴사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보호자 말에 따르면 환자는 평소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았고 특별히 격하게 움직이는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전공의는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걸릴 수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환자가 조금만 늦게 도착했어도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1시 36분 생후 4일 된 아기가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병원에 왔다. 첫째가 아이를 미는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부모의 학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호자가 나쁜 사람이라고 의심하긴 싫지만,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 등 선례가 더러 있었다고. 의료인은 현행법상 '신고 의무'가 있어서 아동 학대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는다. 고심하던 담당의는 보호자에게 관련 제도를 설명한 뒤 경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했다.

경찰 조사관은 오후 3시께 센터에 찾아왔다. 그사이 짧은 여유가 생긴 덕에 일부 의료진은 일찍이 주문해서 식어가고 있던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그들은 젓가락을 움직이면서도 전공책을 뒤적이고 환자 차트를 살폈고, 오전에 어떤 환자들이 왔었는지 상황을 공유하며 처치 방법을 고민했다. 그것도 잠시, 누군가 "7번 환자 멘탈이 처진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까지 안정적이었던 7번 침대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것이다. 모두가 허겁지겁 달려나갔다.

'어레스트(Cardiac Arrest, 심정지)였다. 소생실로 옮겨진 7번 환자의 낯빛은 검붉게 변해있었다. 의사들은 번갈아 가며 침대에 올라가 심장 마사지를 반복했다. 침대에서 내려온 전공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환자의 기도를 막았던 피를 뽑아내자 바이털 사인도 점차 제자리를 찾았다. 허 치프는 "식도에 있던 암 세포에서 발생한 출혈이 문제였다"며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고, 이젠 피가 저절로 멎길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나 시계는 이제 겨우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하>편에 계속

imaro@tf.co.kr

원문 출처 [TF르포-응급실 24시] '삐--' 삶과 죽음의 숨가쁜 교차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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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5년 옥외가격표시제&lt;상&gt;] 미용실·식당 '꼼수', 불만커지는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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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들은 옥외가격표시제를 사실상 미끼상품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변지영 기자
미용실들은 옥외가격표시제를 사실상 미끼상품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변지영 기자
미용실들은 옥외가격표시제를 사실상 미끼상품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변지영 기자

정부가 소비자의 선택권 강화와 요금 안정을 위해 2013년 1월에 도입한 '옥외가격표시제'가 시행된 지 올해로 5년 차다. 매장 면적 66㎡(약 20평)이상의 이·미용실과 150㎡(약 45평)의 일반음식점 및 휴게음식점을 의무 업종으로 외부에 5개 품목 이상의 서비스 가격을 표시토록 하고있다. 이어 지난 2016년 7월부터는 학원도 의무 업종으로 지정됐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가격 비교를 통해 업종 간의 공정 거래 및 업소의 신뢰도를 증진시키기 위한다는 취지로 시행된 이 제도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미용실·음식점② 학원

"두 번 속이는 거 아니에요? 기분 더 나빠요"

옥외가격표는 고객 우롱하는 '미끼 상품'으로 전락해[더팩트| 변지영 기자] 지난 7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미용실을 찾은 강영미(36) 씨에게 외부 가격에 맞게 시술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돌연 이렇게 말했다. 강 씨는 "입구에 붙여놓은 가격은 미끼 상품아니냐" 면서 "고객을 두 번 우롱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강 씨는 "2달 전 바가지 비용을 내고 머리를 했다"며 "워낙 악곱슬이라 미용실에서 매직을 자주하는데, 입구에 세워 놓은 '매직 49000원'이란 입간판의 가격만 믿고 들어갔다가 낭패를 봤다"고 말했다. 이미 샴푸를 끝낸 상황에서 미용사가 '모질을 보니 단백질 함유량이 높은 클리닉을 받아야 한다'고 뒤늦게 고지해 울며 겨자먹기로 추가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외부 가격표는 믿지 않게돼 단골 미용실만 찾는다"면서 "명확한 제도 개선이 없다면 '충주 미용실 사건'처럼 부당한 요금을 내게 되는 건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라고 말했다.

강 씨가 말한 충주 미용실 염색 사건은 지난 2016년 5월 26일 충청북도 충주시에 위치한 한 미용실 업주 안모 씨가 고객에게 가격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상습적으로 부당 요금을 받아온 사건이다. 특히 해당 미용실이 과거에도 장애인, 새터민(탈북민),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을 상대로 230여만 원의 부당요금을 청구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의 공분을 더했다.

옥외가격표시제도가 알려진 데에도 당시 해당 미용실에서 뇌 병변을 앓고 있던 장애인에게 머리 염색 값으로 52만원을 청구한 사건의 영향이 컸다.

◆"미용실, 음식점 옥외가격표시제…미끼로 전락"

가격 비교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제도가 시행된 지 5년째지만, 가격표시 지침에 적합하지 않거나 형식적인 수준에 그쳐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요금을 고지해야 함에도 미용실에서는 모호한 가격을 표시한 상태다. /변지영 기자

지난 7일 <더팩트> 취재진은 직장인 손님들이 많은 서울시 구로구를 찾았다. 구로구에 위치한 대부분의 미용실에서는 옥외가격표를 게시하고 있었다. 구로구에 위치한 한 미용실은 오후임에도 시간을 내 찾아온 손님들로 가득했다. 입구 앞에는 컷트, 셋팅, 매직 등 각종 시술에 대한 가격을 책자로 고지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미용사에게 앞의 가격을 보고 들어왔다고 전하니, 머리가 반 이상 탔다며 단백질 함유량이 높은 4~6만 원의 클리닉 시술을 포함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도가 잘 이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대다수 가격표가 그럴 듯 하게 최저금액만을 고지해 고객을 호객하는 쇼윈도 광고판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특히 게시한 가격표에는 요금 책정 기준을 모호하게 적은 뒤, 기장, 숱 등에 따라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등 소비자에게 안내된 금액과 실제 금액이 다른 경우도 많아 소비자 선택권 강화와 업종의 신뢰도 증진이라는 도입 취지를 무색케 했다.

오죽하면 소비자들도 입구에 세워둔 가격표시를 미끼 상품으로 인식하는 등 가격표 자체에 신뢰를 잃은 듯 했다.

이날 미용실을 찾은 김보람(29) 씨는 "그걸 누가 믿어요"라며 "천차만별인 미용실 가격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부터 가게에 들어가지 않고도 가격을 쉽게 비교할 수 있게 외부에 가격표가 배치돼 좋았다. 하지만 미용실 가격표에 적힌 가격만을 내고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미용실 업주들은 이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며 항변했다.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최종요금'을 미리 알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옥외에 공지한 가격과 실제 지불하는 비용이 차이나는 이유를 묻자 4년 차 미용사 김모(31)씨는 "음식처럼 눈에 딱 보이는 제품이 아닌 서비스라서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7년 차 미용사 송모(38)씨는 "솔직히 최저요금을 고지해야 소비자들이 찾아온다"면서 "기장이나, 숱 등의 이유를 들어 추가비용을 높이는 게 각 디자이너의 실적에도 포함되기 때문에 홍보성으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미용실이 외부가격표에 표시해야하는 '가격'은 소비자가 해당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최종 가격으로, 부가가치세, 봉사료 등을 포함한 실제지불가격을 의미하지만 실제 미용실에 붙여 놓은 옥외가격표는 미끼 상품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이 전국 211개 미용실을 대상으로 옥외표시가격과 실제 지불금액을 조사한 결과, 추가요금이 발생하는 곳이 84.7%(179곳)에 달했다.

음식점 업주들은 가게 입구와는 거리가 있는 중앙 통로에 가격표를 세워두기도 했다. /변지영 기자

옥외가격표시제가 꼼수로 변질된 것은 음식점들도 마찬가지였다.

구로구를 비롯해 금천구, 경기도 동안구의 먹자골목에 있는 음식점들은 공통적으로 중앙 도로에 큰 현수판을 걸거나 입간판을 세우는 방식으로 옥외가격표를 업소를 광고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한식이나 분식집 등 단일 품목을 파는 업종은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횟집, 호프집 등에서는 외부가격표시를 한 가게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유독 음식점들이 업종별로 옥외가격표시를 이행하는 데 편차를 보이는 것은 제도가 업종의 메뉴에 대한 고민없이 일괄적인 표시기준을 들이댔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정책경영국 김원식 과장은 "타 업종에 비해 음식점은 한식, 일식, 중식 등 메뉴가 다양하다. 한식당의 경우 5개 이상 표시는 간단하지만 호프집이나 횟집 등은 사실 술을 올려야하는지 안주를 내야하는지 실효성이 떨어지고, 횟집은 싯가에 따른 변동이 있어 최종가격고지가 애매한 것"이라면서 "업계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구분해 제도가 적용되야 한다"고 말했다.

구로구에 위치한 음식점들은 입구 앞에 가격을 표시하는 대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가격을 표시해 보행자의 통행과 건물의 미관을 해치고 있었다.

업소 입구에 옥외가격표시가 없는 이유를 묻자 족발집 업주 고모(62) 씨는 "아예 중앙 통로 앞에 크게 세워놨다"면서 "다른 업체들도 다들 광고 용도로 활용하는데 우리만 입구 앞에 표시하면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옆 건물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한모(58) 씨도 "A4용지로도 가능하다는데 이렇게 많은 음식들 중에 무얼 골라 적어야 하느냐"면서 "그림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입구에서 떨어진 중앙에 현수막으로 세워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음식점은 업종별로 옥외가격표시제 이행률에 차이가 발생했다. /변지영 기자

이를 단속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실제 시행법규에는 '외부가격표시물은 영업소의 입구나 주출입문 주변 등 소비가가 외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여야 한다'고 공시돼 있어 법에 명시된 게시 위치의 기준이 모호해 단속을 한다해도 행정처분을 받을 일은 희박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다수의 업주와 소비자들은 옥외가격표시제도가 의무인지조차 모르기도 했다. 이는 시행 후 5년이 흘렀음에도 제대로 된 점검과 홍보가 이뤄지지 않아 업주와 소비자들의 인식에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음을 방증했다.

이날 호프집을 찾은 김모(26)씨 "단순히 홍보를 위한 가격표시인줄로만 알았다"며 "밖에 있는 가격표를 보고 들어가면 가게에서 점심 메뉴와 가격이 다르다고 말해 비싼 값을 낸 적이 있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라면 단속을 제대로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관계부처의 '형식뿐인 단속'에 꼼수 가격표 늘어

이처럼 옥외가격표시제가 고객을 호객하는 미끼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미용업계와 요식업계는 정부의 미비한 점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용업계 측은 이 제도가 시행될 당시부터 의견 수렴과정이 체계적이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지자 우후죽숙 허위 요금을 기재하는 미용실들이 판치게 됐다며 허울 뿐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 서영민 홍보국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현장의 미용실 가격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컷트의 경우만 해도 큰 미용실 같은 경우는 원장님의 경력 등에 따라서 책정되는 비용이 다르다. 궁여지책으로 옥외에 가격을 써두지만 그 간극이 너무 커서 크게 의미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 국장은 "제도가 도입될 당시 현장 업주들이나 중간 의견 수렴인인 미용업계의 여론 수렴도 없이 공문이 내려와 법이 시행됐다"고 전했다.

서 국장은 "청주에서 장애인 폭리를 취했던 한 명의 미용사가 문제가 되면서 복지부에서 성급하게 부랴부랴 도입한 측면이 있다. 만드나마나 한 법이라면 시장에서 호응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주무부처 공무원들이 정책을 알고 대화를 할 만하면 자주 바뀌면서 도돌이표처럼 현장의 반영이 헛돌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서 국장은 "사회가 신뢰 사회로 구축되면 가장 좋겠지만 무엇보다 현장의 실태를 파악하고 목소리를 담은 관리 감독이 있다면 이 제도가 장기적으로 정착되는데 유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주무부처의 열악한 점검 인원과 형식뿐인 점검 절차가 옥외가격표시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었다. /변지영 기자

보건복지부 구강생활건강과 이태호 사무관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제도는 입법예고를 거치고 절차를 밟아서 적절히 시행했다"면서 "미용실에서 소비자들에게 제대로된 가격을 고지하지 않고 부풀려 받는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을 위해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사무관은 "올해도 몇 차례 현장 점검에 나섰다"면서 "올 1월 서울, 경기, 충청권의 8개의 미용업소를 무작위로 방문해 이행 여부를 점검했지만, 적발사례는 없었다"고 전했다.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자주 바뀌면서 업계와의 소통이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업무를 맡은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2년 주기로 발령을 나가다보니까 어쩔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지자체는 한정된 인원으로 모든 업소들을 점검하기란 무리라고 토로했다.

구로구청 위생과 홍지숙 주무관은 "재작년 12명이 구로구 전체를 돌며 미용실을 점검했다"면서 "행정처분이라기 보다는 시정조치가 가능한 부분을 계도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일일히 잡으면 업소 차원에서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홍 주무관은 "재작년 구청의 점검 결과 옥외가격표시제를 위반한 사항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사실상 고지한 비용과 내부에서 지불하는 비용이 같은지에 대해서는 점검 과정에서 확실히 알 수 는 없다"고 전했다.

동안구청 환경위생과 식품안전팀 박직수 팀장도 "현재 동안구에만 380개 업종의 음식점들이 있다. 점검 결과 식당은 옥외가격표시제도가 잘 정착하긴 한 상태"라고 일축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안전정책과 김홍태 사무관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어떤 규제던 찬반이 나뉜다. 식재료 원료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나는데, 가격 표시의 효과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기 때문에,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여러 이야기를 수렴해 신중히 검토히 진행해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대답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특정 업소들이 옥외가격표시제를 홍보용이나 미끼 상품으로 변질해 활용하면서 경쟁이 치열한 중심상권에서는 업소가 소비자의 신뢰를 잃는 문제도 생기고 있다"면서 "단순히 표시했는지만을 확인하기보다 지불 비용이 같은지를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실효성 있는 옥외가격표시제의 시행이 필요성을 인식하고 가격표시 방법 및 형식의 표준화 방안 마련, 옥외가격표시지침 준수 지도 등을 관계부처와 각 지자체에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hinomad@tf.co.kr

원문 출처 [시행 5년 옥외가격표시제<상>] 미용실·식당 '꼼수', 불만커지는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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