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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순의 길거리 사회학] 이승엽 은퇴 단상, 노력의 배신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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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으로 국내 프로야구계에 큰 족적을 남긴 국민타자 이승엽. 2017시즌 은퇴를 앞둔 마지막 올스타전에서 구본능 KBO총재(왼쪽)의 꽃다발을 받고 있다./더팩트DB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으로 국내 프로야구계에 큰 족적을 남긴 국민타자 이승엽. 2017시즌 은퇴를 앞둔 마지막 올스타전에서 구본능 KBO총재(왼쪽)의 꽃다발을 받고 있다./더팩트DB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으로 국내 프로야구계에 큰 족적을 남긴 '국민타자' 이승엽. 2017시즌 은퇴를 앞둔 마지막 올스타전에서 구본능 KBO총재(왼쪽)의 꽃다발을 받고 있다./더팩트DB

[더팩트 | 임태순 칼럼니스트] 이승엽 선수가 1997년 말 또는 98년 초 삼성야구단 관계자들과 함께 필자가 근무하던 신문사를 들렸다.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MVP(최우수선수상)를 수상한데 대한 감사 인사를 온 것이다. 그는 체육부원들에게 장 지갑을 하나씩 돌렸다. 지갑에는 천 원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지갑도 고마운데 돈까지 들었다’고 하자 야구 담당 선배기자는 “지갑을 선물할 때는 빈 채로 주지 않는다”며 “지갑을 채우라는 의미로 뭔가를 넣어서 준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듣고 ‘나이에 비해 참 생각이 깊다’라는 기억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후 그는 승승장구했다. 인성뿐만 아니라 실력도 출중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홈런왕이 된 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 타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추석 전날인 지난 3일에는 그의 은퇴경기가 열렸다. 그는 마지막 경기에서도 연타석 아치를 그리며 팬들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추억을 선사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TV를 보니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글이 자주 비쳤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짐작한대로 그의 좌우명이었다. 원래 선배 양준혁 선수의 모토였는데 이승엽 선수가 이어받았다고 했다. 그가 한 시즌 홈런 56개, 프로야구 통산 홈런 467개 등 대기록을 남기고 은퇴하게 된 것도 노력이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글귀가 자꾸 눈에 밟혔다. ‘과연 노력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의 좌우명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노력하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신화에 빠져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격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승엽 선수의 좌우명이 교과서에 실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림픽 은메달을 따고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지나친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결과다. 노력은 하되 과정과 결과를 분리해서 보는 자세가 아쉽다. 사진은 2016리우올림픽 선수단의 귀국 장면./더팩트DB

그러나 세상일이 노력한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선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더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노력하면 성취하게 되고 성취하지 못한 것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더욱 노력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노력=성취’ 등식을 맹신하게 되면 우리 자신이 피곤해지고 불행해진다. 노력해서 안 되면 괴롭고 좌절감을 맛본다. 또 성취하지 못하면 상심하고 실망하게 된다. 좌절하고 실망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철학자인 탁석산 씨는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라는 책에서 ‘노력지상주의’를 경계했다. “우리는 노력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특히 입시가 있는 중고생에게는 노력하지 않으면 일류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공부를 못 하거나 좋은 대학에 못 가는 사람은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성실성마저 의심받는다. 이런 분위기는 대학과 사회까지 이어져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물론 본인의 노력이 공부나 일의 성취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이런 생각에 전적으로 지배당하면 곤란하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노력해서 성공하기도 하지만 노력해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왜 우리는 노력지상주의에 경도돼 있을까. 아마 성장, 성공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결과를 중시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목표를 정한 뒤 노력해서 달성하고 또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것에 익숙해왔다.

이를 통해 많은 것을 얻기도 했지만 잃은 것도 많다. 경주마처럼 목표 또는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땀을 흘리는 과정의 아름다움, 소중함을 몰랐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나쁘면 모든 게 소용이 없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들이 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4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돌이켜보면 4위는 물론 10위도 대단한 것 아닌가.

이제는 노력은 하되 과정과 결과를 분리해서 보자. 절대 노력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단지 땀을 흘리되 결과에 집착하거나 연연해하지 말자는 것이다. 땀 흘렸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스스로가 무능하게 보인다. 이 얼마나 비참한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씨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책에서 “모든 결과는 과정이 있어야 가능한데 이 땅의 사내들은 이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면서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오직 결과만 가지고 비교하고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까닭에 불안하다”고 꼬집었다.

설령 노력이 배신한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자. 노력의 배신에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많은 것을 배우지 않는가. 과정으로서의 노력을 사랑하자. 아마 이승엽 선수도 노력에 배신당하며 더욱 성장하지 않았을까.

thefacr@tf.co.kr

원문 출처 [임태순의 길거리 사회학] 이승엽 은퇴 단상, 노력의 배신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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